〈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 인터뷰
웹툰을 통한 삶의 ‘체험’. 가능할까요?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바탕으로 한 전문 분야 웹툰,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작가.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한 그의 만화 〈닥터 프로스트〉는 사람의 트라우마와 스스로 자신에 대해 깨달아가는 과정에 대한 섬세한 묘사로 인기가 높다. 특히 최근에는 본인이 직접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재밌으면서도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는 이야기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였다.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웹툰의 매력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람도 많다는 후문.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날로 높아지는 웹툰의 인기를 반영하여, 21세기형 만화잡지인 ‘웹툰 플랫폼’을 소개하는 전시 〈GO! 웹툰! 웹툰! ACC〉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를 찾은 이종범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이종범 작가와 함께 한 〈웹툰 작가와의 만남〉 현장. 웹툰 작가를 희망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으로 붐볐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첫 방문이신지! 오늘 성공적으로 ‘작가와의 대화’도 마치셨는데, 소감이 궁금합니다.
광주에는 그동안 다섯번 정도 방문했는데, 이 공간은 처음이에요. 굉장히 청중의 집중도가 높아서 놀랐고, 또 다른 독자와의 대화 모임에 비해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분이 오셔서 한번 더 놀랐어요. ACC의 웹툰 전시가 연령대의 벽을 허무는 자리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 티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진솔한 이야기로 인기를 끌고 계시는데요! 그러한 이야기의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전혀 영감이 없습니다(웃음). 그 프로그램이 저에게 굉장히 고마운 프로그램이면서, 동시에 고통스러운 프로그램인 이유가 있어요. 방송에 나가기 위해 이야기를 바로 만드는 것이 제겐 불가능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생각해왔던 것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방송에서 말했던 것들은 오랫동안 제가 생각해왔던 것을 정리해서 이야기 한 것이고요. 그 말인 즉, 곧 바닥난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와 지금 딱 많은 프로그램인 동시에, 고민이 너무 많이 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만화가가 되기로 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학창시절, 늘 반에 그림 잘 그리는 친구 한명씩 있잖아요. 저도 우리 학교에서는 그림으로 ‘짱’이었습니다. 그러다 우리 동네에 만화가가 이사 왔다는 소문을 듣고, 물어물어 그를 찾아갔어요. 그 만화가는 저를 잘 맞이해주셨습니다. 제 그림을 보며 다양한 이야기도 해주시고, 나이도 물어보시고요. 그러다 ‘제가 만든’ 만화를 보여 달라고 하셨죠. 저의 이야기를요. 그 때가 기억에 남고요.
그 후, 고등학교에서는 교내 만화동아리만이 유일한 등교 이유였죠. 고등학교 때 정말 만화에 미쳐있었는데, 대신 부모님과의 합의점이 바로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만화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생각한 것이 ‘인문학’이었고, 인문학 중 하나인 심리학을 선택하여 전공하게 되었답니다.
다만, 저는 어렸을 적 꿈을 이루는 것이 당연하다고는 생각 하지 않아요. 크면서 보는 것이, 경험하는 것이, 만나는 사람이 다른데 어떻게 꿈이 어렸을 적하고 같을 수 있을까요!
만화를 사랑하는 소년에서, 실제 웹툰 작가로 데뷔하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에도 늘 ‘만화가’라는 직업이 마음속에 남아 있었어요. 이제 다시 만화를 그려서 데뷔를 할까, 아니면 제가 대학 재학시절 열중했던 음악을 다시 더 배워서 음악 분야로 가야하는 지 고민을 했어요. 하지만 지금 보면, 만화를 한 장도 그리지 않았던 대학시절이 저에게 직업만화가로 살아감에 있어 큰 도움을 준 시절입니다.
저는 졸업 후에도 3년 동안 웹툰 작가로서의 데뷔준비를 계속 했습니다. 데뷔준비를 시작할 때 일종의 좌절상태였어요. 군대 제대 전, 스스로 ‘힐링’하기 위해 그렸던 짧은 단편을 빼면, 전 이십대 대부분 그림을 그리지 않았거든요.
그러데 다른 사람들은 너무 뛰어났죠. 자신감이 정말 없었어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스스로 어떤 종류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시절, 늘었던 것은 주량과 아주 많은 책을 빨리 읽고 글을 빨리 쓰는 능력이었어요. 그러다 전문소재로 제작된 웹툰 만화에 대해 떠올렸습니다.
10개월간의 기다림,
가장 기본을 잊고 있었다.
바로 “심리학”!
내가 심리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바로 심리학 기반의 ‘닥터프로스트’
2011년에 그 여정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당시 웹툰 시장에 딱 하나 없는 분야가, 전문 소재 만화였거든요. 취재를 하고 만화를 그리는 것은 없었던 거죠! 저는 운이 좋았죠. 저는 그래서 대학시절에 갈고 닦았던 주량, 친화력 그리고 글을 쓰고 읽는 능력을 활용해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때 그린 그림을 보면 정말 그림도 엉망이고 내용도 엉망이에요. 지금도 힘들 때면 꺼내본답니다. 제가 깨달은 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카드’를 열어보아서, 그걸 이용해서서 데뷔를 하면 된다는 거였어요.
제가 데뷔했던 곳은 작은 규모의 웹툰 사이트였습니다. 그러다 네이버 웹툰 같은 곳을 생각했고, 10개월 동안 7번의 거절을 당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심리학’기반의 만화를 포털 담당자에게 지푸라기라도 잡듯 제안했고, 드디어 ‘전문 소재 만화’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7번의 거절 끝에 얻은 기회라니, 정말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데뷔 후, 웹툰에서 표현하고자 한 이종범 작가만의 특별한 키워드가 있었나요?
네. 바로 “체험!”입니다. 독자한테 어떤 체험을 시켜주느냐가 저에겐 가장 중요해요. 자기 자신이 무슨 감정을 느끼는 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진짜 없거든요. 내가 지금 화가 났는데 왜일까? 지금 내가 슬픈데 정확한 이유가 뭘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죠. 저는 이십대 내내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어요. 저는 제 만화에서 독자에게 그런 ‘체험’을 시켜주고 싶었어요. 제 만화에서 노력하는 부분이 그런 체험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사람이 웃고 행복해 보이는 데, 저 정체가 뭘까? 와 같은 고민,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경험이요. 앞으로 저의 다른 작품에서도 ‘어떤 체험’을 시켜줄 수 있는가가 중요한 키워드 일 거 에요.
웹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고, 실제로 드라마나 영화로도 제작되고 있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웹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우선 어떤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리고 그 이야기가 독자를 만날 때 돈이 많이 들지 않아요. 영화나 드라마만 봐도 제작하는 데 돈이 많이 들잖아요. 게임도 그렇고요. 유일하게 소설과 만화만 돈이 적게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쓸 수 있고, 할 수 있는 장르입니다. 만화는 그림과 함께 하는 매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내용이 이렇게 많이 만들어지고 있고요.
심리학 전문 소재 만화가로서, 심리학도로서 예상하는 웹툰의 미래는?
전혀 모르겠는데요.(웃음) 하지만 인지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현재 이야기의 단위가 짧아지는 현상이 있어요. 드라마도 웹드라마가 되고, 영상도 유투브 시대가 되는 등 서사구조가 짧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매우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작가님의 만화도 서사가 짧아질까요?
제 만화는 그렇진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웹툰이 가지고 있는 형식 자체와 한 번에 볼 수 있는 이야기는 굉장히 짧아지고 있어요. 웹드라마는 5분이죠? 웹툰은 1분에서 2분 분량이 되고 있어요. 영화는 두 시간인 데도 말이죠. 그런 면에서 웹툰이라는 형식자체가 이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맞는 발명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즉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 수준으로 인터넷 망이 빨라져서 인터넷 전송 속도만 빨라져도 한국 다음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소비할 것 같은 것이 바로 웹툰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생각하는 ‘아시아’의 개념은 무엇인가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아시아를 어떤 식으로 만나면 재밌을까요?
아시아나 유럽이라든지 문화권을 가로지르는 모든 말은 앞으로 없어질 개념일 것 같아요. 아시아라는 구분까지도 충분히 미래를 생각한다면, 의미나 개념이 사라질 것이라고 봅니다. 의미가 분명했던 과거와 의미가 없어질 것이 분명한 미래 사이 어느 지점에 지금 있는 것이죠. 그 두 개를 비교하는 접근은 어떨까요? 아시아를 아시아로 구분 지었던 것은 과거엔 인종이었고, 그 다음엔 문명이었고요. 앞으로는 없어질 거 에요. 그 맥락 속에서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왜 그 의미가 사라질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기획전 등이 ACC에서 열렸으면 좋겠어요.
ACC웹진 4호 네번째 주인공으로서 ACC와 ‘웹’진에 한마디!
ACC웹진은 권력의 예술과 대중 예술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는 중요한 웹진이라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그 지점에 대표적으로 위치한 분야가 ‘웹툰’이잖아요! 웹툰 과도 많은 교류와 교감이 있는 웹진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