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구적인 인류 이동의 시대에서 ‘디아스포라’가 동시대 예술에 끼친 영향을다양한 국적의 큐레이터, 예술가, 비평가의 교류를 통해 살펴보는 국제큐레이터 포럼(ICF).
ICF(International Curators Forum)는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국제 큐레이터 연합 단체로 시각예술 및 미디어 아트 부문에서 네트워크를 공유하고 세계 각지에서 개최되는 비엔날레 간 연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6년, ICF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공동주최로 국제 큐레이터 포럼을 개최했다. 전체 일정은 프로그램은 ACC와의 큐레이터 공동 선발과 심포지엄 개최, 해외기관 방문 등 총 3차의 리서치 여행으로 구성되었다. 본 포럼에 참여한 본 사업에 참여한 김해주, 최재원, 한혜진 큐레이터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개인자격이 아닌 ACC를 통해 한국인 큐레이터로서 ICF국제큐레이터포럼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것은 또 남다른 의미였을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참여를 마친 소회는 어떤지요.
김해주 : 2014년부터 2015년 여름까지 문화정보원의 공연예술 아카이브 책임연구원으로, 그리고 지난 4월 30일에 오픈한 전시 <로터스랜드>의 공동기획자로서 ACC와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 리서치는 아시아 지역 리서치를 하면서 갖게된 ‘디아스포라’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을 더 넓은 지역 안에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확장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만, 또한 ACC 의 프로그램과 앞으로의 향방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가운데 기관을 통해 리서치에 참가하게 된 것이라 개인적 관심 뿐 아니라 이 주제가 ACC와 어떤 연계성을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최재원 : 지금 첨예하게 논의되는 담론의 하나인 ‘디아스포라’를 열정적으로 탐색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그곳이 디아스포라의 현장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로서 디아스포라를 새롭게 제안해야 한다는 생각의 여정이었어요. 국제큐레이터포럼에서 해외의 많은 큐레이터들과 열렬한 논의와 교류를 할 수 있어 감사했고 건강함과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었어요. ACC를 통해 한국인 큐레이터로 ICF 국제 큐레이터 포럼의 “큐레이팅 인터내셔널 디아스포라”에 참여하면서, 이제 새로운 제너레이션의 디아스포라를 위한 새로운 영감과 문제의식을 던지는 주체로서 아시아가, 광주가 무엇보다 제 스스로가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인 큐레이터로 단순히 수입품의 포장지를 뜯는 것이 아니라, 서구의 제한과 낡은 유럽 중심주의의 한계 그리고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많은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직면한 한계 등을 통찰하고자 하는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ACC가 ICF에게 서구가 주도하고 있는 비서구에 대한 디아스포라 논의가 아닌, 아시아와 광주가 코어로서 새로운 디아스포라 논의와 실천의 장을 실천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이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생각입니다.
한혜진 : 독립큐레이터가 아닌 ACC 큐레이터로서 참여했기 때문에 ICF 프로그램에서 만나는 사람, 기관등을 통해 ACC 국제 네트워크 확장에 도움이 되고자 했어요. 지구 한 바퀴를 돌며 많은 미술학자, 큐레이터, 작가등을 만나고, 세계 유수의 기관들을 방문하면서 개인적으로 배운점, 느낀점도 많았지만, ACC의 일원으로서 국제 교류의 폭을 넓힌 점은 향후 ACC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ICF가 선정한 방문지역은 대한민국(광주). 중앙아메리카(바베이도스), 아랍에미리트(샤르자) 였는데요.
참여 큐레이터로서 특히 기억에 남는 지역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김해주 : 우선 ICF의 디렉터가 바베이도스 출신이다 보니, 그 지역에 대해 굉장히 잘 알고 있었고요. 저희 일행은 바베이도스 뿐만 아니라 마르티니크도 방문했는데 바로 이곳이 디아스포라 담론에 있어서 중요한 지역입니다. 프란츠 파농*, 에두와르 글리상*과 같은 식민지 담론의 주요 작가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고요. 그 지역을 바베이도스와 함께 방문한 것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ICF 측에서도 디아스포라와 관계하여 그런 지역과 연계성을 둔 것 같아요.
*프란츠 파농(Frantz Fanon, 1925-1961): 프랑스령(領) 마르티니크 태생의 평론가·정신분석학자·사회철학자. 대표 저서 <검은 피부 하얀 가면> 등.
*에두와르 글리상(Édouard Glissant, 1928-2011): 프랑스령 카리브해 섬 마르티니크 출신 작가, 대표저서 <관계의 시학> 등.
기억에 남는 것은, 작가를 만났을 때는 일단 연배가 있는 작가들이 디아스포라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거에요. 심지어 한 작가는 본인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식민담론이라는 것을 듣지 못하고 살다가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다시 그 개념에 대해 재발견하고 역사를 다시 접했다고 해요. 작가가 살던 곳이 ‘디아스포라’담론의 중심지 이었음에도 자신의 인종과 환경, 교육에 따라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다, 오히려 외부에 가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거죠. 다시 되돌아와서는 마르티니크의 다양한 사람들을 담는 사진가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사실 ‘그 땅에서 디아스포라 담론의 뿌리를 찾는다.’ 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산의 경험을 통해 오히려 그 땅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상황을 생각할 수 있었어요.
최재원 : 바베이도스와 마르티니크요. 원래 카리브 해 지역이 블랙디아스포라 담론의 중심지역이라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마르티니크에 도착한 날 밤 광장에서 벌어지던 축제에서 굉장한 분위기와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해방 후에도 여전히 피지배-식민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바베이도스와 달리 마르티니크에는 레게의 파워와 독창적인 본능의 높은 음악적 수준이 놀라웠죠. 특히 우리가 캐럴로 알고 있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원래 경건한 백인들이 성가가 아니라, 민중들에게 쉬운 캐럴로 환호 받았던 노래로 알고 있었는데요. 레게 리듬으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중략)…감사기도 드릴 때”을 나직하게 부르다가 갑자기 “폭력을 멈춰라!”외치며 선동적이고 광적인 리듬과 템포로 다같이 춤을 췄습니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프랑스 식민 역사에서 종속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체성, 뼛속깊이 살아 꿈틀거리는 레게음악을 ‘자기화’시킨 지점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혜진 : 저도 두 분처럼, 바베이도스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중앙아메리카 중에서도 쉽게 가지 못하는 나라이기도 하고, 또 바베이도스라고 하면 천상의 휴양지로 흔히 생각을 하죠. 하지만 그 곳의 작가들은 작업을 정말 열심히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마르티니크는 아시아와 유럽의 디아스포라 적 특성을 가진 작가들이 많답니다. 앞으로 사회에 많이 알려질 것 같은 지역입니다.
김해주 : 그리고 샤르자 비엔날레(3차)가 운영되는 방식도 재밌었어요. 전시 자체가 일 년 내내 다카르, 베이루트와 같은 여러 지역에서 포럼과 세미나로 진행된다고 해요. 중동 지역 내 예술 인프라가 없는 다른 지역으로 물을 퍼나르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물, 토양, 요리, 곡식, 이라는 구체적인 주제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지역의 환경과 사회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제의 담론을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광범위한 지역에서 공유하는 접근이 흥미로웠습니다.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가 이 국제 큐레이터포럼 협력사업의 주요 안건이었죠.
이 프로그램에 한국의 큐레이터로서 참여하면서, 타국의 큐레이터와 디아스포라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나요?
김해주 : 관점보다는 각자의 상황이 조금 달랐다고 생각해요. 디아스포라를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이주의 경험을 기반으로 정의한다고 한다면요. 저 같은 경우, 태어난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 디아스포라인 사람이거나 그런 가족의 이력을 가진 다른 참가자하고는 겪은 상황과 경험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최재원 : 서구 큐레이터들의 관점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디아스포라 논의는 비서구 큐레이터들에 의해 새로운 맥락으로 제안되고 구성되어야 하죠. 샤르자에서 ICF 참가자와 이 주제로 얘기할 때, ‘자기 스스로 격렬하게 디아스포라를 겪고 있지만 그것을 디아스포라로 소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하면서, 저는 한국 얘기를 했었어요. 저 또한 독일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스스로 전치되는 경험을 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혀끝에서 발화되기 이전의 언어’를 찾는 작업을 해온 작가 차학경*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그의 작품 “딕테”와 영화 이론 등은 디아스포라를 겪는 화자 자신에서 진술되지 않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시점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디아스포라 논의를 현재화하고 자기화할 수 있는지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라는 아시아나 한국에서 가장 논의가 활발할 수 있는 주제임에도 이것을 ‘현재화’ 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서구사회의 논점을 그대로 옮겨 올 순 없는 것이니까요.
*차학경( Theresa Hak Kyung Cha, 1951-1982) 부산에서 태어나 1961년 미국으로 이민한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 대표 작품 <받아쓰기:Dictee> 등.
한혜진 : 서로 다른 점을 많이 느꼈습니다. 우리가 흔히 ‘디아스포라 아티스트’라고 말하면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아시아계 작가로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타국의 큐레이터는 디아스포라의 범위를 넓게 보더라고요. 그 나라에 안에 있는 아시아에서 온 디아스포라 작가, 예컨대 3세대, 4세대까지 이어지는 세대 속에서 작가들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고민합니다. 뿐만 아니라 작가를 밖에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ICF나 런던 대학 등 에서 바베이도스 작가들 전시를 했고, 올해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경우 그동안 나라별로 전시관은 있었지만 이번에 디아스포라 전시관이 설립되기도 했죠.
이 프로그램에서 리서치하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ACC에 적용할 수 있는 것, 예컨대 역할을 고민 해보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부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김해주 : 이번 프로그램은 ICF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쉽게 만나지 못하는 작가와 함께 현장 리서치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어요. 마찬가지로 ACC도 아시아 지역의 디아스포라를 대상으로 아시아 지역의 큐레이터, 작가와 함께 주관하여 기획해서 리서치를 하고, 콘텐츠를 모으고, 네트워크를 확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재원 : 디아스포라와 관련된 논의와 실천에 있어 스스로를 어떻게 재설정(Re-configuration)하냐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는 디아스포라와 관련하여 정리되지 않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ACC에서 이를 현재화 시키고, 아시아화 시켜서 한국 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에 물꼬를 터주는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프로그램도 실천으로 연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아스포라’는 강제로 떠밀린 이주민의 역사에서 시작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문화, 테크놀로지, 과학 등 여러 가지 방면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관점 자체가 바뀌어야할 시점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ACC가 스스로를 주체에 두고, 광주라는 트라우마가 있는 ‘나’이지만 그것을 넘었을 때, 아시아라는 현재의 리더십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한혜진 : 저는 ACC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 활용의 측면에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속한 ACC 아시아문화연구소 팀은 교류하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자원은 모을 수 있지만 한계가 있지요. 그 다음부터는 교류를 통해서만 공유를 할 수 있거든요. 이번에 가서도 비엔날레 담당자, 관계자를 알게 되었고 연락처를 많이 획득할 수 있었어요. 세계와 계속 교류해나간다면 ACC의 큰 자산이 될 것 같습니다. 협력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힘든 일이지만요.
정말 흥미롭습니다. 세 분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데요. 이 프로그램의 결과물은 어떻게 공유할 예정인가요?
김해주 : ICF와 함께 출판프로젝트를 진행할거에요. 출판 뿐 아니라 이 후 세미나나 심포지엄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재원 : 저는 샤르자를 다녀오자마자 독일 잡지 쿤스트 포럼에 “지구적 근대의 징후와 분사 허브들”라는 주제로 글을 기고했는데요. 그 기사는 샤르자와 두바이, 아부다비에서의 장면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외에는 김해주 큐레이터께서 말하신 것처럼, ICF와 디아스포라에 대한 주제로 책을 함께 출판할 예정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우리 여정에 대한 책이라기 보단, 디아스포라에 대한 새로운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혜진 : 결과물에 관하여 아랍에미리트에서도 세 번 정도 회의를 했었고, ICF와도 미팅을 했습니다. 단순한 결과보고서보다는 참여자의 글과 함께 책을 만들어 담론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카이브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는 ‘현재부터 시작해서 과거로’ 흘러가는 것을 역으로 조사하고, 아카이빙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