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과 함께 동시대 이슈 논의 ··· 공론의 장
영국 런던의 대표적인 공원 하이드 파크(Hyde Park)의 나무와 돌 사이로 걷다보면 또 다른 큰 돌덩이와 거울이 오롯이 서있다. 가까이 다가가보면 작가 이우환의 작품 이다. 조용한 작품 옆 오른 쪽 낮은 높이의 건물을 들여다보면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살아있는 느낌이 드는 공간은 참 오랜만이다. 무엇이 이 예술 공간에 숨결을 불어 넣은 것일까?
서펜타인 갤러리는 현대 미술 잡지인 아트 리뷰에서 가장 파워풀한 미술계 인사로 여러번 선정한 바 있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Ulrich Obrist)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곳이다. 사회 전반에서 전시기획과 출판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하는 그는 인스타그램에서 22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지닌 파워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에 만나는 유명 작가의 친필 메시지를 포스팅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예술 감독의 활동 뿐 아니라 서펜타인 갤러리의 홈페이지도 기관의 성격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데, 공공/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페이지에는 굵은 글씨로 아래와 같은 글귀가 있다.
“서펜타인 갤러리의 교육과 프로젝트는 사회적 변화와 과도기 사이 예술의 역할을 재정의 합니다. 사회적 이슈에 다양한 대응을 할 수 있 있도록 커뮤니티와 예술가를 연결합니다.”
이어서 교육 프로그램의 공식적인 대분류 명칭은 ‘어린이와 놀 권리’, ‘돌봄의 정치, ’언어와 권력- 무브먼트, 이민과 저항의 언어‘ 이다. 언뜻 보면 미술관 갤러리가 아닌 사회 운동 단체의 웹사이트로 보인다. 모두가 이용하는 공공의 장소, 공원에 갤러리가 있어서일까? 서펜타인 갤러리는 모든 이의 목소리를 내는 공간이자, 계속해서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만드는 공간으로 끊임없이 전환하고 있다.
한편, 서펜타인 갤러리의 대중적인 인지도 성장의 역사도 흥미롭다. 하이드 파크 주변에는 내로라 하는 뮤지엄이 즐비한 데, 대표적으로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 자연사 박물관, 과학 박물관 등이 있다. 공원 안에 있는 데다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현대미술 갤러리인 서펜타인 갤러리는 1970년 개관 시기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91년 줄리아 페이튼-존스(Julia Peyton-Jones)가 디렉터를 맡으며 갤러리의 네트워킹을 확장,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후원 아래 리노베이션을 하는 등 하드웨어의 확장을 이어나갔다. 2000년대 부터는 스타급 건축가들과 임시 구조물을 설계하여 무료로 개방하는 서펜타인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난 10년간 네덜란드의 렘 콜하스(Rem Koolhaas), 미국의 프랭크 게리(Frank Ghery), 프랑스의 장 누벨(Jean Nouvel) 등이 참여하면서 대중의 관심과 서펜타인의 명성은 높아졌다. 그리고 2013년, 제2의 서펜타인 갤러리로서 유명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 설계의 서펜타인 새클러 갤러리(The Serpentine Sackler Gallery)를 개관하여 확장에 완성을 가한다. 그 결과 서펜타인 갤러리는 개관 이래 2,260명이 넘는 실험적인 예술가와 동시대 건축가들의 야심찬 프로젝트를 런던 지역 주민과 관광객에게 소개해왔다.
도심 속 공원서 펼쳐지는 여름 밤, 파크나이트
연 8회 혁신적인 전시,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교육 프로그램, 야외 조각, 파빌리온 건설과 디지털 프로젝트 운영, 주제를 정해 끊임없이 대화하는 행사 ‘마라톤’, 지역 자원봉사 참여까지 다양한 공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서펜타인 갤러리. 현장에서 만난 스텝들이 그 중에서도 입을 모아 추천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파크 나이트(Park Nights)’였다.
2002년 시작하여 올해로 개최17주년을 맞이하는 파크 나이트는 위에서 언급한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활용한다. 정확히 말하면 서펜타인 파빌리온과 상생한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이 파크 나이트의 플랫폼이 되어 대중을 함께 맞이하기 때문이다. 파크 나이트는 7월에서 9월 매주 금요일 저녁에 열리며, 예술, 건축, 음악, 영화, 이론 및 무용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가 참여한다. 위촉된 예술가들은 프리다 에스코베도의 파빌리온 디자인을 반영하여 새로운 장소 특정적 작품이나 쇼케이스 형태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관람객이 그 과정에서 독특한 건축, 공연 예술 경험을 할 수 있는 데 중점을 둔다. 또한 지난 해 참여했던 팀과도 연계하여 지속적으로 예술가와 대중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 데, 예를 들어 2017년 요리를 이용한 작업으로 성공했던 래디컬 키친(Radical Kitchen)은 다시 올 해 파빌리온으로 돌아와 목요일 점심에 커뮤니티 그룹, 예술가, 활동가, 작가 및 건축가를 초대한다. 이 행사에서는 음식을 통한 연결 고리를 형성하는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다. 파빌리온 건축물을 놀이로서 즐길 수 있는 패밀리 프로그램도 물론 있다.
전 세계의 떠오르는 신예 스타, 예술가, 활동가들이 파크나이트에 참여하기 때문에 행사장은 늘 북적거린다.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처럼 파크나이트 또한 흥미로운 학제 간 융합을 추구하여 늘 흥미로운 주제와 담론이 생성되는 현장이다. 올 해 참여 아티스트도 DJ 예지(Yaeji),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도로시 이안노네(Dorothy Iannone),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수상 작곡가 카미시 워싱턴(Kamasi Washington)등 ‘동시대’와 가깝게 맞닿아있는 다채로운 예술가들이 참여한다. 대중은 함께 참여하여 동시대의 이슈를 논의하고, 서펜타인 갤러리와 함께 한 여름의 파크 나이트를 보내게 된다.
(c) 2018 사진 – 서펜타인 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http://www.serpentinegalleries.org
서펜타인 갤러리의 파크나이트, 마라톤,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매 시즌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모두가 편히 쉬는 일상의 휴식 공간인 하이드 파크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반 시민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곳이다. 서펜타인 갤러리도 처음 개관 때에는 익숙하고 인기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런던 시민에게 사랑받는 공간이자 동시대의 담론을 생성하는 허브가 되었다. 런던 풍경에 창의적인 건축물을 선보이고, 매 해 새로운 이야기로 메시지를 송출한다. 하이드 파크의 나무들이 런던 공기를 맑게 하고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는 것처럼 서펜타인 갤러리 또한 런던의 예술 흐름을 장기적인 공공 프로그램으로 꾸준히 환기시키고 있다.
*본 글은 무등일보 월간지 아트플러스 117호 원고原稿입니다.